내 본업은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나름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며 본인도 대치동 및 압구정 학원에서 공부하며 자랐기에 교육업에 대한 소견은 동년배 친구들보단 깊은 편.
내가 봐온 수백명의 학생들 중 일부 안타까운 학생들의 사례를 취합해서 "고등학교 입시를 조진 학생이 국제학교 가서 더 망하는 길"의 시나리오를 써 보겠다.
이 글은 가상의 학생 A군의 이야기를 다루며, 절대 특정 한명의 학생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삶과 또 다른 여러 학생들의 삶을 섞어 만든 이야기다. 많은 제자들과 학생들이 부분부분 공감하고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도 담겨 있을테니 최대한 이입해서 읽어주면 좋을 듯 하다. 나아가 자녀 교육을 하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586세대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70년생인 A군의 부모님은 서성한급 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연애해서 결혼한 케이스이다. 일평생 대기업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돌린 부장급 인력인 A군의 아버지와 석사학위를 향해 달리다가 A군이 생겨서 전공을 강제로 내조학으로 전과당한 A군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다.
분당에서 거주하며 상경만 꿈꾸던 A군의 부모님은 부동산에 진짜 거품이 끼기 전에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강남 3구의 재건축 아파트 진입에 성공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 집권과 함께 집값이 슈팅했고 서민과 중산층의 애매한 경계선에 서있던 A군의 집안은 명실상부 강남 8학군 재건축 아파트 보유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중산층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데 성공한다. A군은 정자동에서 같이 우정을 다진 초등학교 동창들을 뒤로하고 진짜들의 싸움인 강남 3구로 전입하게 된다.
A군은 부모님의 강요아닌 강요를 이기지 못해 이미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수학 선행을 고등학교 2학년 과정까지 빼 놓았었고, 이후 엠솔 수학올림피아드 입문반에서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왜 다른 과목이 아니라 수학에 집중하기로 했는지 A군은 모른다. 우리 아이는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는 90퍼센트의 수도권 학부모가 다 그렇듯, A군이 밥상에서 반찬투정을 부리며 밥알을 세는 것 마저도 A군의 부모로 하여금 A군이 수학적 재능과 흥미가 넘친다는 착각을 심어주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서울로 상경했지만 사실 A군에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조금 달라진건 매일 가던 학원을 분당선을 타지 않고 2호선을 탈 수 있다는 점? A군의 부모님은 이 재건축 아파트에 살던 다른 똘똘한 아이들과 팀을 꾸려서 더 좋은 선생님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수업을 맡겼다. 수업료는 조금 비싼 수준이었지만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우리 아이는 결국 서울과학고를 가거나, 못해도 민사고를 가서 서울대를 가서 엘리트가 되어 성공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십만원 정도 증가한 수업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군은 공부에 큰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여느 8학군의 중산층 집 자제와 같이, A군에게 있어 인생의 목표는 특목고(혹은 자사고) 졸업 후 부모님보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을 진학하여 대기업에 들어가서 부모님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정도였다. 왜 내가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창의성을 거세당한 대한민국 청소년 답게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A군은 강남 3구 기준 남들이 하는 방식대로 공부했고, 여느 학생이 그렇듯 중학교 1학년때 서울과학고를 목표로, 중학교 2학년때 세종과고를 목표로, 그리고 중학교 3학년때 민사고를 목표로 공부했다.
결국 여느 학생이 그렇듯 A군은 민사고에 떨어지게 된다.
A군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뉴스피드에는 같은 학년 친구들의 고등학교 합격증으로 가득 찼다. A군은 그 글들을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A군의 부모님은 절망했다.
우리 아이는 분명히 똑똑했고, 우리는 분명히 최고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 물론 옆집 B군 부모처럼 시간당 10만원짜리 고액 과외는 맡기지 못했지만, 그 옆집 C양 부모(A군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하청업체 부장이다)보다는 확실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절망하는 A군의 어머니와 달리, A군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족 식사 이후 두 대의 연초를 태우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아들에게 "지금의 실패를 양분삼아 다른 길을 걸으면 된다"고 말한 뒤 안방으로 들어가서 가로세로연구소의 선거조작 뉴스를 보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서 점심으로 육개장을 먹고 회사 사옥 건너편에서 담배를 태우던 중, 자신의 대학 동창이었던 K씨의 전화를 받게 된다.
"잘 지내지?"
"그럼~ 평소에 먼저 연락 안하면 전화도 없던 놈이 웬일이냐?"
"미안하다 야 ㅎㅎ 아들은 잘 있고? 그런데 혹시 너 국제학교에 대해서 아는거 있냐?"
A군의 파란만장한 유학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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